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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건 단지 말 한마디 뿐이라고




내 하루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까. 아침마다 생각하는 주제이다. 하루를 평온하게, 평화롭게, 따뜻하게, 또 뜨겁게 풍족하게 보내고 싶다. 가만히 따뜻했던 하루에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해본다.

어느 주말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따라 퇴근 중이었다.

화창한 주말의 한강공원은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퇴근 중이던 나는 업무 스트레스를 얼굴에 그대로 붙여놓은 채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잔디밭에 앉아있던 어떤 외국인과 눈이 딱 마주쳤다.

자전거를 탄 사람을 구경하고 있던 건지, 내 표정이 구경할 만큼 심각했는지는 모르겠다.

평소의 한국인들이라면 서로 습관적으로 마주친 눈을 피했을 텐데 그 외국인,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며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까딱하고 웃었다. 피서 중인 외국인과 주말에 일하던 한국인이 찰나의 순간 한 공간에 연결된 기분이었다.


우리와는 다른 머쓱함을 털어내는 젠틀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낯선이와도 이렇게 사람 냄새를 폴폴 풍기며 하루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후에 유럽여행을 갔을 때 비슷한 냄새가 나는 일을 겪었다.

평일 아침, 출근시간의 복작복작한 카페.

테이블이 없어 자리를 헤매는 나에게 창가에 앉아있던 누군가.

"여기 좋은 자린데 그냥 같이 여기 앉아요"

라며 손바닥으로 빗자루를 만들어 자신의 쟁반과 빵가루를 테이블 한쪽으로 삭삭 치웠다.


여행의 목적이 사람 구경이던 나에게 또 다른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생면부지의 노인과 젊은이가 출근길 카페의 조그마한 테이블에서 마주쳤다.

노인은 조그마한 원형 탁자에서 신문의 한 귀퉁이를 보고 있었고, 청년은 잠시 가방을 올려두고 커피를 기다릴 공간이 필요했다.

"여기 좀 앉아도 될까요?"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3초간의 정적

"그나저나 이제 좀 쌀쌀하네요. 어떠세요, 잘 지내시나요?"

따위로 이어지는 생면부지의 노인과 청년의 짧고 자연스러운 대화는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는 인사에 인색하다. 지인들과 여러 인사를 나누기는 하지만 일상에서 마주치는 낯선 이에게 건네는 감사와 미안함과 안부를 묻는 표현에는 서툴다.


예전에는 단지 서로 바쁘니까, 모르는 사람끼리 어색하니까 그냥 지나치는 거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표현이 서툰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 자체가 서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화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표정하게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은 바로 내 얼굴이었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는 길이었다. 

종착역에서 나와 함께 버스에 탑승하신 어떤 할아버지는 제시간에 출발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버스기사님에게 왜 타는 사람도 없는데 출발하지 않느냐고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기사님도 대답하시다가 결국 버스가 출발한 뒤에도 언성이 계속 높아졌고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평화롭지 못한 상황에 놓인 것에 짜증이 나고 있었다.

버스에 타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내리고 나서 버스는 무겁고 이상한 침묵이 감돌다가 사라져 가면서 점점 일상의 분위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기사님의 표정은 체념과 한숨이 섞인 희한한 무표정이었는데 그 얼굴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사님께 위로의 한마디를 하면 어떨까.'


이것은 오지랖인가 관심인가 

무의미한 의무 부여의 저울질을 한참이나 하던 나는 내릴 때가 되어서 결국 카드를 찍으면서 용기 내어 한마디 건넸다.


"힘드시죠. 고생 많으십니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버스에서 내려서 학교에 걸어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하루를 따뜻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건 단지 말 한마디뿐이구나.

일상을 살다 보면 다시 차가워지고 무뎌진다. 그러다 문득 다시 생각한다.


하루를 바꾸는데 필요한 건 단지 말 한마디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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